2007년 포뮬러 원 시즌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2007년 포뮬러 원 시즌은 2007년에 개최된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의 시즌이다. 17개의 그랑프리가 개최되었으며, 키미 라이코넨(페라리)이 루이스 해밀턴(맥라렌)과 페르난도 알론소(맥라렌)를 1점 차로 제치고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페라리는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맥라렌은 스파이 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실격 처리되었다. 주요 규정 변경으로는 브리지스톤의 타이어 단독 공급, 엔진 개발 동결, 타이어 사용 의무화 등이 있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2007년 세계 선수권 대회 - 2007년 FIFA U-17 월드컵
2007년 FIFA U-17 월드컵은 대한민국에서 개최되어 24개국이 참가, 나이지리아가 우승했으며, 대한민국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토니 크로스, 매컬리 크리산투스 등의 수상자를 배출한 국제 축구 대회이다. - 2007년 세계 선수권 대회 - 2007년 FIFA 클럽 월드컵
2007년 FIFA 클럽 월드컵은 6개 대륙 클럽 대항전 우승팀과 개최국 대표를 포함한 7개 팀이 일본에서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쟁하여 AC 밀란이 우승했고, 카카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모든 참가 팀이 첫 출전이었다. - 포뮬러 원 시즌 - 뉘르부르크링
뉘르부르크링은 독일 뉘르부르크에 위치한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서킷으로, 험난한 노르트슐라이페와 현대적인 GP-슈트레케로 구성되어 주요 모터스포츠 이벤트 개최 및 차량 성능 시험 장소로 활용되며, 일반인 트랙 주행 기회와 문화 행사 개최로 대중적인 명소이다. - 포뮬러 원 시즌 - 2008년 포뮬러 원 시즌
2008년 포뮬러 원 시즌은 규정 변경과 18번의 그랑프리 개최, 루이스 해밀턴의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 페라리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1위, F1 최초의 야간 레이스 개최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 포뮬러 원 프로젝트 - 자우버
- 포뮬러 원 프로젝트 - 뉘르부르크링
뉘르부르크링은 독일 뉘르부르크에 위치한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서킷으로, 험난한 노르트슐라이페와 현대적인 GP-슈트레케로 구성되어 주요 모터스포츠 이벤트 개최 및 차량 성능 시험 장소로 활용되며, 일반인 트랙 주행 기회와 문화 행사 개최로 대중적인 명소이다.
2007년 포뮬러 원 시즌 | |
---|---|
시즌 정보 | |
시즌 | 2007년 |
챔피언 | 키미 라이쾨넨 (드라이버 챔피언) 스쿠데리아 페라리 (컨스트럭터 챔피언) |
이전 시즌 | 1950년 포뮬러 원 시즌 |
다음 시즌 | 2008년 포뮬러 원 시즌 |
대회 정보 | |
지원 시리즈 | GP2 시리즈 포르쉐 슈퍼컵 |
시즌 개요 | |
개막전 | 오스트레일리아 |
최종전 | 브라질 |
레이스 수 | 17 |
팀 및 드라이버 | |
참가 팀 수 | 11 |
참가 드라이버 수 | 26 |
기타 정보 | |
기술 규정 | 트랙션 컨트롤 금지 엔진 제어 장치 (ECU) 표준화 |
타이어 공급업체 | 브리지스톤 |
논란 | |
스파이 게이트 | 맥라렌 팀은 경쟁팀 페라리의 기술 정보를 불법적으로 입수한 혐의로 기소됨. |
결과 | 맥라렌 팀은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실격 처리되었고, 벌금 1억 달러 부과됨. |
항소 | 맥라렌 팀은 결정에 항소했지만 기각됨. |
주요 사건 | |
컨코드 협정 | 버니 에클레스톤의 서명으로 팀들의 이탈 위협 종식. |
스폰서 | |
스폰서십 역사 | F1 스폰서십의 역사는 1968년에 시작됨. |
2. 팀 및 드라이버
2007년 FIA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에는 다음과 같은 팀과 드라이버가 참가했다.[9] 드라이버 번호는 FIA 공식 2007 참가 명단에 따랐으며, 모든 팀 정보는 포뮬러 원 공식 웹사이트를 기준으로 한다. 역사적인 전통에 따라 13번은 사용되지 않았고, 모든 팀은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사용했다.
미하엘 슈마허와 자크 빌뇌브의 은퇴로, 2005년과 2006년 월드 챔피언인 페르난도 알론소는 이번 시즌 유일하게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 경험이 있는 드라이버였다. 알론소는 르노 F1에서 5년간 활약 후 맥라렌으로 이적했다.
후안 파블로 몬토야는 2006년 미국 그랑프리까지 맥라렌 소속이었으나, 2006년 7월 9일 발표된 대로 2007년에는 NASCAR 컵 시리즈로 옮겨 포뮬러 원 경력을 마감했다.
2006년 8월, 윌리엄스 그랑프리는 테스트 드라이버 알렉산더 우르츠가 2007년 레이스에 참가하며 마크 웨버(레이싱 드라이버)를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달 레드불 레이싱은 데이비드 쿨사드와 마크 웨버(레이싱 드라이버)를 2007년 드라이버로 발표하며 크리스티안 클라인을 대체했다. BMW F1은 자크 빌뇌브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남은 시즌 동안 테스트 드라이버 로베르트 쿠비차가 그를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쿠비차는 2007 시즌에도 레이스 시트를 유지하고, 세바스티안 페텔은 테스트 드라이버로 남았다.
르노 F1은 페르난도 알론소의 대체 선수로 헤이키 코발라이넨을 확정했고, 페라리는 은퇴하는 미하엘 슈마허의 대체 선수로 키미 래이쾨넨을 발표했다. 수퍼 아구리 F1은 사콘 야마모토를 대신하여 앤서니 데이비슨을 확정했다. 맥라렌은 2006 GP2 시리즈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을 두 번째 드라이버로 확정했다. 스파이커 F1은 티아고 몬테이루를 대신하여 아드리안 수틸을 첫 번째 드라이버로 확정했다.
2007년 7월, 스파이커 F1은 크리스티안 알버스가 스폰서십 문제로 팀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마르쿠스 빈켈호크가 유러피안 그랑프리에서 스파이커의 두 번째 차를 몰았다. 이후 스파이커는 사콘 야마모토가 남은 7번의 그랑프리에 출전할 것을 확정했다.[10] 토로 로소는 스코트 스피드와의 충돌을 이유로 BMW 테스트 드라이버 세바스티안 페텔로 교체했다.[13]
윌리엄스 그랑프리 드라이버 알렉산더 우르츠는 포뮬러 원에서 은퇴했고, 윌리엄스 테스트 드라이버 나카지마 카즈키가 2007년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우르츠를 대체했다.[15]
2007년 F1에 데뷔한 드라이버는 루이스 해밀턴, 헤이키 코발라이넨, 아드리안 수틸, 세바스티안 페텔, 마르쿠스 빈켈호크, 나카지마 가즈키 6명이다. 루이스 해밀턴은 제4전에서 첫 포인트 리더가 되었고, 제6전 첫 우승으로 다시 포인트 리더로 부상했다. 그 자리를 최종전까지 유지하며 루키 챔피언의 쾌거에 큰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달성하지 못했다. 헤이키 코발라이넨은 르노의 에이스였던 잔카를로 피지켈라를 랭킹에서 앞섰으며, 데뷔 후 16경기 연속 완주를 달성했다. 아드리안 수틸은 스파이커 F1 소속으로 성적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경험 있는 크리스티안 알베르스를 앞지르거나, 비가 내린 일본 그랑프리에서 8위에 입상하는 등 재능을 발휘했다. 세바스티안 페텔은 미국 그랑프리에서 로베르트 쿠비차의 대역으로 데뷔하여, 데뷔전에서 당시 최연소 입상 기록을 경신했으며, 다음 해 이후의 활약으로 이어졌다. 마르쿠스 빈켈호크는 1전만의 스폿 참전 계약이었지만, 데뷔전인 제10전 유럽 GP에서 작전이 적중하여 랩 리더로 빛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카지마 가즈키는 일본인 최초의 F1 레귤러 드라이버인 나카지마 사토루를 아버지로 두었으며, 최종전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윌리엄스에서 레이스 데뷔를 하여, 일본 최초의 부자 2세 드라이버가 되었다.
2. 1. 팀 목록
팀 | 컨스트럭터 | 차량 | 엔진 | 타이어 | No. | 드라이버 | 라운드 | No. | 테스트/리저브 드라이버 |
---|---|---|---|---|---|---|---|---|---|
보다폰 맥라렌 메르세데스 | 맥라렌-메르세데스 | MP4-22 | 메르세데스 FO 108T | B | 1 | 페르난도 알론소 | All | rowspan="2" | | |
2 | 루이스 해밀턴 | All | |||||||
ING 르노 F1 팀 | 르노 | R27 | 르노 RS27 | B | 3 | 지안카를로 피지켈라 | All | rowspan="2" | | |
4 | 헤이키 코발라이넨 | All | |||||||
스쿠데리아 페라리 말보로 | 페라리 | F2007 | 페라리 056 | B | 5 | 펠리페 마사 | All | rowspan="2" | | |
6 | 키미 라이코넨 | All | |||||||
혼다 레이싱 F1 팀 | 혼다 | RA107 | 혼다 RA807E | B | 7 | 젠슨 버튼 | All | 34 | 크리스티안 클레인 |
8 | 후벵스 바히셸루 | All | |||||||
BMW 자우버 F1 팀 | BMW 자우버 | F1.07 | BMW P86/7 | B | 9 | 닉 하이트펠트 | All | 35 | 제바스티안 페텔 |
10 | 로베르트 쿠비차 | 1–6, 8–17 | |||||||
제바스티안 페텔[64] | 7 | ||||||||
파나소닉 토요타 레이싱 | 토요타 | TF107 | 토요타 RVX-07 | B | 11 | 랄프 슈마허 | All | rowspan="2" | | |
12 | 야르노 트룰리 | All | |||||||
레드불 레이싱 | 레드불-르노 | RB3 | 르노 RS27 | B | 14 | 데이비드 쿨사드 | All | rowspan="2" | | |
15 | 마크 웨버 | All | |||||||
AT&T 윌리엄스 | 윌리엄스-토요타 | FW29 | 토요타 RVX-07 | B | 16 | 니코 로스베르크 | All | 38 | 가즈키 나카지마 |
17 | 알렉산더 위르츠 | 1–16 | |||||||
가즈키 나카지마[65] | 17 | ||||||||
스쿠데리아 토로 로소 | 토로 로소-페라리 | STR2 | 페라리 056 | B | 18 | 비탄토니오 리우찌 | All | rowspan="3" | | |
19 | 스콧 스피드 | 1–10 | |||||||
제바스티안 페텔 | 11–17 | ||||||||
이티하드 알다르 스파이커 F1 팀 | 스파이커-페라리 | F8-VII F8-VIIB | 페라리 056 | B | 20 | 아드리안 수틸 | All | rowspan="4" | | |
21 | 크리스티안 알베르 | 1–9 | |||||||
마르쿠스 윙켈호크 | 10 | ||||||||
사콘 야마모토[66] | 11–17 | ||||||||
수퍼 아구리 F1 팀 | 수퍼 아구리-혼다 | SA07 | 혼다 RA807E | B | 22 | 다쿠마 사토 | All | rowspan="2" | | |
23 | 안토니 데이비슨 | All |
2007년 FIA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에는 다음과 같은 팀과 드라이버가 참가했다.[9] 드라이버의 차량 번호는 공식 FIA 2007 참가자 명단에 따랐으며, 모든 팀 정보는 포뮬러 1 공식 웹사이트를 기준으로 했다. 역사적인 전통에 따라 차량 번호 13번은 없었으며, 모든 팀은 브리지스톤 타이어로 경쟁했다.
2. 2. 드라이버 변경
2005년과 2006년 월드 챔피언인 페르난도 알론소는 르노 F1에서 5년간 활약한 후 맥라렌으로 이적했다. 미하엘 슈마허와 자크 빌뇌브의 은퇴 이후, 알론소는 이번 시즌에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유일한 드라이버였다.
후안 파블로 몬토야는 2006년 미국 그랑프리 이후까지 맥라렌 소속이었으며, 2006년 7월 9일에 발표된 대로 2007년에는 NASCAR 컵 시리즈로 옮겨 사실상 포뮬러 원 경력을 마감했다.
2006년 8월 2일, 윌리엄스 그랑프리는 테스트 및 리저브 드라이버인 알렉산더 우르츠가 2007년에 레이스 시트에 오르며 호주 출신 마크 웨버(레이싱 드라이버)를 대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6년 8월 7일, 레드불 레이싱은 2007년 드라이버 라인업으로 데이비드 쿨사드와 마크 웨버(레이싱 드라이버)를 발표하여 크리스티안 클라인을 대체했다. 같은 날, BMW F1은 자크 빌뇌브의 계약이 즉시 종료되었으며, 시즌의 남은 기간 동안 테스트 드라이버인 로베르트 쿠비차가 그를 대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쿠비차는 이후 2006년 10월 19일에 2007 시즌에도 레이스 시트를 유지하며 세바스티안 페텔은 팀의 테스트 드라이버로 남게 되었다. 2006년 12월 21일, BMW 자우버는 전 조던 그랑프리 및 GP2 시리즈 드라이버인 티모 글록을 두 번째 테스트 드라이버로 발표했다.
2006년 9월 6일, 르노 F1은 페르난도 알론소의 대체 선수로 헤이키 코발라이넨을 확정했다. 2006년 9월 10일, 페라리는 은퇴하는 미하엘 슈마허의 대체 선수로 키미 래이쾨넨을 발표했다.
2006년 11월 15일, 수퍼 아구리 F1은 사콘 야마모토의 대체 선수로 앤서니 데이비슨을 확정했다. 2006년 11월 24일, 맥라렌은 그 해 2006 GP2 시리즈 타이틀을 획득한 자사 주니어 프로그램 드라이버인 루이스 해밀턴을 두 번째 드라이버로 확정했다.
2006년 12월 21일, 스파이커 F1은 월드 투어링 카 챔피언십으로 진출하는 티아고 몬테이루를 대신하여 아드리안 수틸을 첫 번째 드라이버로 확정했다.
2007년 7월 10일, 스파이커 F1은 크리스티안 알버스가 스폰서십 자금 지불 실패를 이유로 더 이상 팀에서 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르쿠스 빈켈호크는 유러피안 그랑프리에서 스파이커의 두 번째 차를 탔다. 2007년 7월 25일 스파이커는 일본인 드라이버 사콘 야마모토가 남은 7번의 그랑프리에서 출전할 것을 확정했다.[10] 2007년 7월 31일, 토로 로소는 스코트 스피드와 STR 팀 대표 프란츠 토스트 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는 이유로 BMW 테스트 드라이버 세바스티안 페텔로 교체했다.[13]
2007년 10월 8일, 윌리엄스 그랑프리 드라이버 알렉산더 우르츠는 포뮬러 원 레이싱에서 즉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14] 윌리엄스 테스트 드라이버 나카지마 카즈키가 2007년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우르츠를 대체했다.[15]
2007년 F1에 데뷔한 드라이버는 6명이며, 다음과 같다.
- 루이스 해밀턴은 제4전에서 첫 포인트 리더가 되었고, 제6전 첫 우승으로 다시 포인트 리더로 부상했다. 그 자리를 최종전까지 유지하며 루키 챔피언의 쾌거에 큰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달성하지 못했다.
- 헤이키 코발라이넨은 르노의 에이스였던 잔카를로 피지켈라를 랭킹에서 앞섰으며, 데뷔 후 16경기 연속 완주를 달성했다.
- 아드리안 수틸은 스파이커 F1 소속으로 성적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경험 있는 크리스티안 알베르스를 앞지르거나, 비가 내린 일본 그랑프리에서 8위에 입상하는 등 재능을 발휘했다.
- 세바스티안 페텔은 미국 그랑프리에서 로베르트 쿠비차의 대역으로 데뷔하여, 데뷔전에서 당시 최연소 입상 기록을 경신했으며, 다음 해 이후의 활약으로 이어졌다.
- 마르쿠스 빈켈호크는 1전만의 스폿 참전 계약이었지만, 데뷔전인 제10전 유럽 GP에서 작전이 적중하여 랩 리더로 빛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활약으로 계약이 재검토되지는 않았고, 빈켈호크의 F1 참전은 이 레이스가 유일했다).
- 나카지마 가즈키는 일본인 최초의 F1 레귤러 드라이버인 나카지마 사토루를 아버지로 두었으며, 최종전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윌리엄스에서 레이스 데뷔를 하여, 일본 최초의 부자 2세 드라이버가 되었다. 다음 해에는 데뷔 불과 2경기 만에 포인트를 획득하는 등 활약했다.
3. 경기 일정
라운드 | 경기 이름 | 그랑프리 | 서킷 | 날짜 |
---|---|---|---|---|
1 | 오스트레일리아 그랑프리 | 오스트레일리아 GP | 앨버트 파크, 멜버른 | 3월 18일 |
2 | 말레이시아 그랑프리 | 말레이시아 GP | 세팡 인터내셔널 서킷, 쿠알라룸푸르 | 4월 8일 |
3 | 바레인 그랑프리 | 바레인 GP | 바레인 인터내셔널 서킷, 사히르 | 4월 15일 |
4 | 스페인 그랑프리 | 스페인 GP | 카탈루냐 서킷, 바르셀로나 | 5월 13일 |
5 | 모나코 그랑프리 | 모나코 GP | 모나코 서킷, 몬테카를로 | 5월 27일 |
6 | 캐나다 그랑프리 | 캐나다 GP | 질 빌너브 서킷, 몬트리올 | 6월 10일 |
7 | 미국 그랑프리 | 미국 GP |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 인디애나폴리스 | 6월 17일 |
8 | 프랑스 그랑프리 | 프랑스 GP | 느베르 마그니-쿠르 서킷, 마그니-쿠르 | 7월 1일 |
9 | 영국 그랑프리 | 영국 GP | 실버스톤 서킷, 실버스톤 | 7월 8일 |
10 | 유럽 그랑프리 | 유럽 GP | 뉘르부르크링, 뉘르부르크 | 7월 22일 |
11 | 헝가리 그랑프리 | 헝가리 GP | 헝가로링, 부다페스트 | 8월 5일 |
12 | 터키 그랑프리 | 터키 GP | 이스탄불 파크, 이스탄불 | 8월 26일 |
13 | 이탈리아 그랑프리 | 이탈리아 GP | 몬차 자동차 경주장, 몬차 | 9월 9일 |
14 | 벨기에 그랑프리 | 벨기에 GP | 스파-프랑코샹 서킷, 스파 | 9월 16일 |
15 | 일본 그랑프리 | 일본 GP | 후지 스피드웨이, 오야마 | 9월 30일 |
16 | 중국 그랑프리 | 중국 GP | 상하이 인터내셔널 서킷, 상하이 | 10월 7일 |
17 | 브라질 그랑프리 | 브라질 GP | 호세 카를로스 파시 자동차 경주장, 상파울루 | 10월 21일 |
4. 규정 변경
2007년 시즌에는 포뮬러 원 규정에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 타이어: 미쉐린이 F1에서 철수하면서 브리지스톤이 유일한 타이어 공급업체가 되었다. 각 레이스마다 두 가지 종류(프라임과 옵션)의 타이어가 제공되었고, 관중들이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소프트 타이어에는 흰색 표시가 추가되었다. 처음에는 흰색 원으로 표시했지만, 말레이시아 그랑프리부터는 타이어 홈에 흰색 선을 긋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35] 레이스 중에는 두 가지 종류의 타이어를 모두 사용해야 했지만, 젖은 노면에서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

맨 아래: 더 소프트 타이어 ('옵션' 타이어),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 금요일 연습 주행: 이전 시즌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5위에서 11위 팀은 금요일에 세 번째 차량을 운행할 수 없게 되었다.[36] 연습 세션 시간은 60분에서 90분으로 연장되었다.[39]
- 엔진: 엔진 개발이 동결되었고,[37] 모든 차량에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조종석 표시등이 장착되었다.[38]
- 안전: 구조 요원에게 사고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각 차량에 경고등이 장착되었다.[38]
- 세이프티 카: 세이프티 카 상황에서 피트 레인 이용 규정이 변경되었다.[39]
- 테스트: 포뮬러 원 팀들은 연간 테스트 거리를 30000km로 제한하는 데 동의했다.
- 차량 식별: 팀의 두 번째 차량은 검은색 대신 노란색 롤 바를 장착해야 했다.
- 엔진: 스쿠데리아 토로 로쏘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들이 2.4리터 V8 자연 흡기 엔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서킷 변경: 카탈루냐 서킷과 스파-프랑코르샹 서킷에 새로운 시케인이 설치되거나 변경되었다.[44][45] 오토드로모 호세 카를로스 파체는 대규모 보수 공사를 거쳤다.[46][47][48][49][50]
4. 1. 엔진
2007년 포뮬러 원 시즌의 엔진 규정은 다음과 같다.- 엔진 개발은 전년도 2006년 일본 GP 시점의 사양으로 동결되었다. 개발 동결 기간은 시즌까지였으나, 이후 년까지 연장되었다.
- 엔진 최고 회전수는 19,000rpm으로 제한되었다.
- 2 레이스 1 엔진 규정에서 금요일 자유 주행은 제외되었다.
4. 2. 타이어
브리지스톤은 2007년 포뮬러 원 시즌의 유일한 타이어 공급업체가 되었다. 이전 시즌까지 경쟁하던 미쉐린이 시즌을 끝으로 F1에서 철수했기 때문이다.각 레이스에서는 두 가지 종류(프라임과 옵션)의 타이어가 제공되었다. 관중과 TV 시청자가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소프트 타이어에는 표시가 되었다. 개막전 오스트레일리아 그랑프리에서는 타이어 옆면에 흰색 원을 그렸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에 따라 말레이시아 그랑프리부터는 그루브 타이어의 홈에 흰색 선 하나를 긋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60]
레이스 중에는 두 종류의 타이어를 모두 사용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단, 젖은 노면으로 진행되는 레이스에서는 이 의무가 해제되었다. 노면 상황에 맞지 않는 타이어라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레이스에 따라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각 드라이버에게는 레이스 주말 동안 총 14세트의 드라이 컨디션 타이어가 제공되었다. 금요일에는 4세트, 나머지 주말 동안에는 10세트가 제공되었다.
4. 3. 자유 주행
2007년 시즌 동안 세 팀의 드라이버들이 연습 주행에 참여했다. 세바스티안 페텔은 시즌 초반 두 라운드에서 BMW 자우버 소속으로, 크리스티안 클라인은 혼다 소속으로 영국 그랑프리에서, 나카지마 카즈키는 윌리엄스 소속으로 5개의 그랑프리에서 참여했다.
금요일 자유 주행은 60분 × 2세션에서 90분 × 2세션으로 연장되었다. 금요일 자유 주행에 출전할 수 있는 것은 각 팀 최대 2명까지였다(세 번째 차량 금지). 세 번째 드라이버를 기용해도 되었다.
4. 4. 피트 레인
피트 레인 주행 속도가 감속되었다. 자유 주행은 80km/h에서 60km/h로, 예선·결선은 100km/h에서 80km/h로 낮아졌다. 세이프티 카 도입 시에는 급유를 위한 피트인이 금지된다(기타 작업은 가능).4. 5. 기타
- 2006년 8월 29일, 국제 자동차 연맹(FIA)은 2007년 FIA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의 잠정적인 일정을 발표했다. 산마리노와 유럽 그랑프리는 제외되었지만, 유럽 라운드는 나중에 다시 개최되었다.[32] 산마리노 그랑프리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확인한 최종 일정은 2006년 10월 18일에 발표되었다.[33]
- 약 반 세기 만에 처음으로 독일 그랑프리가 열리지 않았는데, 이는 이전에 독일 그랑프리를 개최했던 서킷들이 독일 그랑프리 개최를 번갈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켄하임 경주의 프로모터가 "독일 그랑프리"라는 명칭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과 뉘르부르크링 서킷 사이에서 명칭 권리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뉘르부르크링 경주는 기존의 유럽 그랑프리 타이틀을 유지했다.[34]
- 1987년 이후 혼다 소유의 스즈카 서킷에서 20년 동안 개최된 후, 일본 그랑프리는 토요타가 재건한 후지 스피드웨이로 옮겨졌으며, F1이 1977년 이후로 경주를 개최하지 않았던 서킷이다.
- 스파-프랑코르샹에서 열리는 벨기에 그랑프리는 트랙 유지 보수로 인해 2006년 1년 동안 열리지 않다가 다시 개최되었다.
- 1975년 이후 처음으로 한 국가에서 두 개 이상의 그랑프리를 개최하지 않았다.
- 2006년 11월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서킷(Circuit de Catalunya)에서 프리 시즌 테스트가 시작되었으며, 11개 팀 중 10개 팀이 테스트 세션에 참여했다.
- 브리지스톤이 단독 타이어 공급업체가 되었다. 각 레이스마다 2종류(프라임과 옵션)의 타이어를 공급했다. 관객(TV 시청자)이 구별하기 쉽도록 소프트 타이어에는 마킹을 했다. 개막전 오스트레일리아 GP에서는 사이드월에 흰색 원을 그렸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을 수렴하여 그루브 타이어의 홈에 흰색 선 1개를 긋는 방식으로 수정되었다.[60]
- 레이스 중 2종류의 타이어 사용을 의무화했다. 단, 젖은 노면의 레이스에서는 이 의무가 해제된다.
- 2005년과 2006년 시즌에 컨스트럭터 2연패를 달성한 르노는 이번 시즌에 승리 없이 3위로 후퇴했다. 반대로 BMW 자우버는 획득 포인트를 전년 대비 3배로 늘려 2위로 진출했다.
- 혼다 워크스가 부진한 반면, 2년차인 슈퍼 아구리는 프라이베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선전하여 두 번의 입상을 달성했다.
- BMW 자우버의 세 번째 드라이버인 세바스티안 페텔이 미국 GP에서 로베르트 쿠비차를 대신하여 레이스 데뷔하여 최연소 입상 기록(19세 349일)을 세웠다.
- 일본 GP는 1977년 이후 오랜만에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되었지만, 악천후 속에서 레이스 강행과 수송 기관의 마비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자세한 내용은 2007년 일본 그랑프리 (4륜)#문제점 참조).
- 엔진
- 전년도 일본 GP 시점의 사양으로 개발을 동결했다. 기간은 2010년 시즌까지였지만, 이후 2013년까지 연장되었다.
- 최고 회전수를 19,000rpm으로 제한했다.
- 2 레이스 1 엔진 규정에서 금요일 자유 주행은 제외했다.
- 자유 주행
- 금요일 자유 주행을 60분 × 2세션에서 90분 × 2세션으로 연장했다.
- 금요일 자유 주행에 출전할 수 있는 것은 각 팀 최대 2명까지였다(세 번째 차량 금지). 세 번째 드라이버를 기용해도 된다.
- 피트 레인
- 피트 레인 주행 속도를 감속했다. 자유 주행은 80km/h → 60km/h, 예선·결선은 100km/h → 80km/h.
- 세이프티 카 도입 시, 급유 목적의 피트인은 금지되었다(기타 작업은 가능).
- 팀 간의 신사 협정으로, 연간 테스트 주행 거리가 30,000km까지로 제한되었다. 일수는 자유이며, 사용 타이어는 300세트까지였다. 시즌 중 테스트에서는 1대만 주행했다.
- 맥라렌 메르세데스의 컨스트럭터 포인트에 관해서는, 맥라렌과 페라리 사이에 발생한 스파이 의혹과 관련하여 2007년 9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모터스포츠 위원회에서 2007년 시즌의 포인트 박탈 및 미부여가 결정되었다. 1억 달러(처분 당시 환율로 약 115억 엔)의 벌금 지불이 동시에 결정되었지만,[63] 10월 24일의 성명에서는 "5,000만 달러(750억엔 이상)"으로 감액되었다.[59]
5. 시즌 결과
2007년 포뮬러 원 시즌은 3월 18일 호주 멜버른 그랑프리 서킷에서 시작되었다. 키미 라이코넨은 페라리 데뷔전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페르난도 알론소가 2위, 루이스 해밀턴이 3위를 차지했다. 펠리페 마사는 2007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시즌 첫 폴 포지션을 차지했지만, 알론소가 맥라렌에서 첫 레이스에서 우승했고, 해밀턴은 2위를 차지했다. 마사는 2007년 바레인 그랑프리와 2007년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모두 우승했고, 해밀턴은 두 레이스 모두에서 2위를 차지했다. 맥라렌은 2007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알론소가 해밀턴을 제치고 우승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51]
2007년 캐나다 그랑프리는 4번의 세이프티 카(Safety Car) 기간과 큰 충돌을 포함했다.[52] 해밀턴은 이 레이스에서 첫 폴 포지션과 첫 우승을 달성했다.
2007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해밀턴은 세 번째 폴 포지션을 차지했고, 3위를 차지했다. 2007년 유럽 그랑프리에서는 해밀턴의 9경기 연속 포디움 기록이 끝났다.
2007년 헝가리 그랑프리 예선에서 알론소가 해밀턴의 마지막 랩을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알론소는 그리드 6위로 강등되었고, 맥라렌은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포인트 자격을 얻지 못했다.[53] 해밀턴이 우승했고 라이코넨이 2위를 차지했다. 2007년 터키 그랑프리에서는 마사가 승리했고, 라이코넨과 알론소가 그 뒤를 이었다. 해밀턴은 타이어 고장으로 5위를 차지했다. 2007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는 알론소가 해밀턴을 제치고 우승했고, 라이코넨이 그 뒤를 이었다. 이후 맥라렌은 2007년 포뮬러 원 스파이 논란으로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제외되었다.[57] 2007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는 라이코넨이 우승하여 페라리가 월드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확보했다.
2007년 일본 그랑프리는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되었고 악천후로 인해 세이프티 카 뒤에서 시작되었다. 해밀턴이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라이코넨이 레이스에서 우승하고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최종 순위는 라이코넨이 110점, 해밀턴과 알론소가 각각 109점으로 기록했다.